또 다시 스페인 스릴러 영화가 찾아 왔다. 오래 전 찾아 온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의 ‘떼시스’ 와 ‘오픈유어아이즈’ 가 첫 경험이었고, 최근 기억은 기예르모 델 토르 감독의 ‘판의 미로’ 이다. 스페인 스릴러 영화는 할리우드의 스릴러물과는 색다른 모습으로 기억된다. 그런 기예르모 델 토르가 제작자로 참여하고 신예 기옘 모랄레스가 연출한 ‘줄리아의 눈’은 그 이채로움의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소재와 이야기는 매우 익숙하다.
줄리아는 선천적 시력장애를 가졌다. 같은 증세로 이미 시력을 상실한 쌍둥이 언니 사라의 자살로 슬픔에 빠진다. 장례를 위해 언니의 집을 방문한 줄리아는 언니의 자살에 의문을 품는다. 남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언니의 죽음을 조사한다. 묘한 분위기의 이웃들과 자세한 정체를 알 수 없는 언니의 남자친구, 억지로 만류하는 듯한 남편의 행동들에 의혹만 점점 커져 간다. 그러던 중에 남편이 갑자기 실종된다. 줄리아는 더 큰 불안감과 의혹에 휩싸이게 되고, 시력은 점점 악화되어 보이지 않게 된다. 점점 캄캄해지는 눈 앞에서 그녀는 진실을 찾을 수 있을까?
눈먼 여인이 등장하는 스릴러 영화는 우리에게 익숙하다. 멀리 ‘어두워질 때까지(1967)’, ‘블라인드 테러(1973)’로부터 최근 ‘눈먼 자들의 도시(2008)’까지 공포 스릴러 영화에 단골로 사용되었다. 이처럼 눈먼 여인이 나오는 영화는 많지만, 눈이 머는 과정을 그리는 영화는 많지 않았다. 무언가를 잃는다는 것은 슬프고도 힘겨운 일이다. 하지만 무언가를 잃으면 다른 무언가를 곧 얻게 된다. 눈이 먼다는 것은 결과라기 보다 변화의 과정이다. 물론 그 변화는 고통스럽다. 무언가 얻게 되는 결과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그 변화를 받아들이는 태도이다. ‘줄리아의 눈’은 줄리아가 앞을 보지 못하게 되는 변화의 여정을 그리는 영화다.
영화는 관객들이 줄리아와 같이 눈이 멀어 가는 변화를 경험하게 해 준다. 그 경험은 보이지 않는 두려움과 극한 공포감을 잘 느끼게 해 준다. 그 여정의 끝에서 사라와 줄리아의 남편을 죽인 범인을 찾게 해 준다. 그러나 영화는 살인자를 찾는 여정에서 그치지 않는다. 진짜 범인이 드러난 이후의 이야기는 살인동기에 대한 사회적인 의미를 말하고 있다. 영화 속에서 살인동기는 한 남자의 분노였다. 눈먼 자들에게만 존재를 인정 받는 ‘투명인간’과도 같은 소외된 자의 분노인 것이다. 범인인 앙헬은 영화 속 등장인물의 설명처럼 ‘영혼의 빛이 없는 사람’과 같고, 그저 ‘평범하여 기억하기 어려운’ 사람이다. 그와 같이 눈에 띄지 않는 사람은 눈이 먼 사람에게만 필요한 존재로 인지된다. ‘본다’라는 의미는 물리적으로 ‘본다’라는 의미 외에 사회적으로 ‘본다’라는 의미를 함께 가진다. 사회적으로 ‘본다’라는 것은 바로 ‘인정한다’라는 것의 동의어이다. 세상에서 관심을 받지 못하고 소외된 사람은 특별한 일을 만들어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으려 한다. 이러한 특별한 일은 극단적이거나 비이성적인 일로 벌어지기 마련이다. ‘투명인간’은 우리 삶에 실제로 존재한다. 누구나 한 번쯤 투명인간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지 않는가? 남들에 비해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일수록 그런 경험이 많다. 아무리 자신을 알리려고 해도 그걸 알아주는 사람은 없다. 있었다는 것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공포는 인간이 가진 극히 개인적인 감정이다. 그 감정 중에서 가장 연약한 감정이다. 내가 무서워하고 두려움을 느끼는 것에 다른 사람도 공통적으로 두려움을 느끼게 하기 마련이다. 이런 의미에서 공포감은 사회적인 감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영화에서 줄리아는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두려워하고 무서워한다. 줄리아는 시력을 잃기 전 아름다운 기억들을 다시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두렵고, 시력을 잃은 후 진실을 확신할 수 없어 무서워한다. 그 두 가지 다 보이지 않고 볼 수 없는 세계이다. 때로는 보이지 않는, 볼 수 없는 세상과 존재에 대하여 보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영화는 말하고 있다.
'영화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리뷰 : 네버렛미고 (Never Let Me Go 2010)] 사람답게 살려거든 저 울타리 너머에 사랑하나 만들어 가 (0) | 2015.09.06 |
---|---|
[영화리뷰 : 풍산개 (2011, Poongsan)] 둘로 나뉜 세상에서... 경계에 서다. (0) | 2015.09.06 |
[영화리뷰 : (로맨틱헤븐 2011, 히어애프터 Hereafter 2011) ] 죽음을 막연히 두려워 마라 (0) | 2015.09.06 |
[영화리뷰 : 소울키친 (Soul Kitchen 2009)] 파티같은 영화 (0) | 2015.09.06 |
[영화리뷰 : 아메리칸 (American 2010)] 낯설게 하기 : 외로움의 극대화 (0) | 2015.09.0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