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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읽기

[영화리뷰: 이터널선샤인(2004, En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난 너없는 곳은 기억이 안나' - 사랑을 어떻게 지우니

by 박 스테72 2015. 9. 24.


이터널 선샤인 (2015)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9.4
감독
미셸 공드리
출연
짐 캐리, 케이트 윈슬렛, 커스틴 던스트, 마크 러팔로, 일라이저 우드
정보
로맨스/멜로, SF, 코미디 | 미국 | 108 분 | 2015-11-05
글쓴이 평점  

조엘(짐 케리)는 아침에 싸우고 짐을 싸들고 나간 연인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이 자신을 첨 본 사람 취급을 하고 어린 녀석과 히덕거리는 것을 보고 충격에 빠진다. 그러다 그녀가 특정 기억을 지워주는 처치를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자신도 이제 아픈 기억이 된 그녀를 지우기 위해 라쿠나사를 방문한다. 기억을 지우는 처치 과정은 그녀와의 기억을 하나씩 꺼내어 지우는 방법이었다. 어쩔 수 없이 그는 그녀와의 모든 기억을 최근 부터 되짚어 나간다. 그런 과정 중에서 조엘은 크레멘타인의 기억이 모두 상실되는 것이 두려워 지고, 이내 기억을 지우는 장치가 찾아 내지 못하도록 다른 기억에 숨어 들거나, 그 기억을 지우는 깊은 잠에서 깨어나려 애쓴다. 하지만, 라쿠나사의 수장인 하워드 박사까지 동참하여 모든 기억은 지워지고 그녀의 기억만 없어진 다를 것 없는 하루를 시작하는데,,,,,,

사랑의 아픈 기억을 지워지면 행복해 질까? 티끌없이 걱정없는 마음에 영원한 햇빛은 축복일까?

10년 전에 개봉했던 영화 '이터널 선샤인'을 꺼내어 보았다. 10년 전에 보았을 것이라고 확신하던 영화가 완전한 새로움으로 다가왔다. 영화를 보고 불꺼진 방에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고민이 찾아 들었다. 이 영화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맞을지 생각이 깊어졌다. 그만큼 '지금' 내게는 힘든 영화였다. 항상 서툰 영화리뷰였지만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리뷰보다는 넋두리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ternal Sunshine? 무슨 뜻일까?

10년 전에도 지금도 우선 제목이 신경이 쓰였다. 영화를 보기 전에도 보고 난 후에도 제목에 대한 생각이 많았다. 이곳 저곳을 기웃 거리며 제목에 대한 의견을 찾아 보았다. 원제는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로 알렉산더 포프의 시, "Eloisa to Abelard"에서 209번째 줄부터 나온 구절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이 구절이 결국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핵심이 아닐까 싶었다.

How happy is the blameless vestal's lot!
The world forgetting, by the world forgot.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Each pray'r accepted, and each wish resign'd;

영어로 된 인용된 포프의 시에 대한 해석은 미묘한 차이들은 있지만 크게는 다르지 않았다. 이야기로 풀자면 이러하지 않을까 싶다. 한 여자가 있었다. 세상에서 이런 저런 아픔과 시련과 고민을 안고 살아 가고 있었다. 여자는 세상을 벗어나 세상을 잊으면 행복해 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속세를 떠나 신녀(神女; 어디서는 수녀라 하고, 수도자라고도 하는데..)가 되기로 하였다. 속세를 떠났기에 그녀도 세상을 잊고 세상도 그녀를 잊었다. 티끌 하나 걱정없는 그녀의 마음은 언제나 양지이다. 신은 그녀의 모든 기도를 들어 주었고, 그래서 그녀는 소망할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었다. 이 신녀는 모두 잊음으로서 행복한 것일까? 행복하다면 얼마나 행복한 것일까? 영화는 이 이야기를 사랑하는 조엘과 크레멘타인의 현실성 가득한 이별로 풀어 내고 있다.

항상 함께 있으면 행복하고, 늘 같이 있고 싶고, 언제나 모든 것을 나누던 영원할 것 같던 사이가 어느날 이별을 고하고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남보다 못한 사이로 돌아 선다. 서로 보지 않고 생각을 정리하면 새롭게 일상을 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날마다 숨쉬는 순간마다 걸어 다니는 걸음 걸음 공간마다 온통 그 사람과의 기억과 추억과 생각이 스며든다. 그립고 소중한 것 부터 한창 때에는 넘어 갔던 몸서리 치게 싫었던 것 까지 기억이 습격한다. 막아내기 힘들다 좋은 추억이던지 나쁜 기억이던지 아프기는 매 한가지이다. 이럴 때면 그 기억을 지우개로 깨끗이 지우고만 싶어 진다. 영화에도 나온 니체의 인용구 처럼 잊어 버리게 되면 무언가 해결될 것만 같기 때문이다.

"망각한 자들은 복이 있나니, 자신의 실수 마저 잊어 버리기 때문이다.'

 

 

기억이란 생각나는 것, 잊혀진 것은 기억도 추억도 아닌 것

영화의 시작과 종반은 한 장면으로 이어져 있다. 기억을 지워 낸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매끄럽게 설명할 수 없는 끌림으로 다시 썸을 타기 시작하는 그런 이야기로 이어져 있다. 신비롭고 아름다운 막 시작된 사랑의 설렘보다 그들에게 먼저 찾아 온 것은 라쿠나사의 직원 매리의 내부고발성(?) 사실관계 내용과 그 증거인 각자의 증언 테이프였다. 그 테이프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에는 아름다운 추억이란 없었다. 그 증언의 파편들만 들으면 그 둘의 이별은 필연적이었고 당연한 것이었다. 조엘에게 크레멘타인은 항상 이기적인 여자였고, 엄청 밝혀서 매번 남자에게 섹스로만 접근하는 여자였고, 지적이지 못하고 어휘력마저 딸려 밖에서 창피할 때도 있는 그런 여자였다. 크레멘타인에게 조엘은 늘 의욕이 없고 진부한 남자였고, 능력도 없고 밤에도 그저 그런 남자였으며, 적극적이지 못하고 매사의 소심한 찌질이였다. 이런 이들에게 기억을 지워 내는 것이 꼭 필요한 일이었을까? 정말 이들이 아파하는 것은 그런 서로의 가장 안 좋은 모습, 나빴던 순간이었을까? 진짜 유는 아마도 그 반대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헤어진 뒤 헤어진 이유를 처음에는 상대방에서 찾아 보게 된다. 그러다 생각이 조금씩 바뀌게 된다. 사랑했던 사람이었기에 그렇게 나쁜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라 자위해 본다. 그냥 나쁜 남자 나쁜 여자였다면 내 사랑이 비참하기 때문이다. 상대가 나를 떠난 이유는 그럴 수 밖에 없었고, 이별은 결국 운명이라 생각하며 마무리하려 한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제어 할 수 없는 기억들이 갑자기 찾아 오고, 모든 공간과 시간에서 함께한 추억들이 불현듯 날아 온다. 혼자 먹을 음식을 만들어도 항상 2인분이 되 버린다. 독신 남자가 되어서도 화장실에서 앉아서 작은 일을 본다. 자극적인 음식 잔소리할 사람은 갔는데 마트에 가서 장을 보다 카레를 들었다 놓아 버린다. 익숙한 동네에 잡힌 약속에 발길이 장소를 어긋나 그 때 그사람 바래다 주던 길을 걸어 버린다. 불러 주던 노래소리에 가던 길을 멈추고, 티브이에 나오는 여행지 소개에 채널을 멈추게 된다. 이제 혼자 영화보기도 어색해 지고, 홀로 백화점에 가서 슈트를 사기조차 머뭇대어 진다. 아주 수치스런 이야기 부터 자랑스런 순간까지 일상의 모든 점과 선들에서 누군가의 기억이 끼어 든다. 그냥 살아서 숨쉬는 순간 순간이 기억의 습격이다. 애써 밀어 내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래서 실현 가능성없는 바람만 가득해 진다. 시간을 되돌리거나 기억을 모두 없애 버리거나. 있었던 일들이 없었던 일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래 본다. 뜨겁게 사랑했던 만큼 헤어진 후의 기억은 매우 아프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생각나지 않는 것을 우리는 기억이라 부르지 않는다. 지금 애써 막아 내려는 기억들이 시간이 흘러 희미해지고, 어쩌면 훗날 억지로 꺼내어 생각하고 싶어도 생각하기 힘든 기억이 되어 있을 수도 있다. 잊을 수도 없고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 있다는 것, 그만큼 사랑했다는 것이다.

 

 

사랑은 잊혀지는 것보다 기억하는 것

앞에서 이야기한 알렉산더 포프의 시의 내용을 억지로 축약하면 '잊어버리면 행복해진다.'라는 한마디로 축약될 것이다. 때로는 잊어버리는 것이 상책이 될 수 있다. 그냥 애써 잊게 된다면 상처는 딱지가 되고 결국 그 딱지도 떨어져 나가 상처만 약간 남을 것이다. 틀리지 않은 말로 생각되기도 한다.

최근 누군가와 아프게 헤어졌다. 정말 내게 소중했고 고마웠고 헌신적이었다. 아름다웠고 매력적이었으며 선하고 열정적이었다. 그래서 더우기 많이 부족하고 매우 거친 나의 삶에 함께 할 수가 없어 결국 애써 밀어 내었다. 더욱 마음이 애리는 것은 정말 고마웠다고 그리고 잘 지내라고 제대로 된 작별인사 마저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저 마무리짓기 위해 부러 거칠게 밀어 내었다. 그 과정도 힘들고 아팠지만, 늘 찾아 드는 잊혀지지 않는 추억과 기억들이 뒤늦게 밀려 와 무척이나 힘든 시간을 겪게 되었다. 이런 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이야기한다. '잊어, 잊으면 편해 질꺼야.' 얼마나 어려운 주문인지 설명하기를 포기한다. 말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때 누군가 내게 말하였다. '그냥 죽었다 생각해, 그러면 다시 만날 것이라는 희망고문은 사라지겠지만, 함께 했던 것들은 추억할 수 있잖아. 그냥 그 생각들 밀어 내지말고 기억해. 나중에 하고 싶어도 잊혀지면 더 답답할지 모르잖아.'

IT에서 이야기하는 컴퓨팅은 인간의 인지개념을 반영하고 있다. 특히 데이터를 주고 받는 것 그것들을 처리하고 연산하고 산출하는 프로세스와 보관방법이 인간의 뇌구조, 활동과 유사하다. 컴퓨팅에서 데이터의 보관은 잘게 쪼개어 저장소에 담아 놓는다. 그것이 디스크가 되던지 다른 저장장치가 되던지 깊숙히 담아 놓게 된다. 평소에는 그 데이터를 굳이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 데이터가 필요한 순간에 호출하여 재생, 복원하면 된다. 그러다 보면 문제가 발생한다. 데이터가 너무 깊숙이 있어 호출시간이 지연되거나, 혹은 어디에 보관되었는지 파악하기 힘들어 존재는 하지만 망실한 것이나 다름없는 오류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래서 컴퓨팅에서 '메모리'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자주 꺼내 쓰는 데이타나 중요한 데이타를 깊숙한 저장소가 아닌 입출력 공간과 가까운 곳- 메모리라는 공간에 따로 보관하는 것이다. 빠르고 정확하게 그 데이타를 불러 올 수 있게 된다. 문제는 그 메모리의 공간이 생각보다 크지 않고 쉽게 망실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기억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매일 습관처럼 하는 생각들은 부러 하지 않아도 금방 기억으로 재생된다. 하지만, 꺼내 보고 싶지 않거나 애써 밀어낸 기억들은 불러 오기가 쉽지 않다. 지금 아픈 생각들, 제어할 수 없이 공격하는 기억들을 지우고 싶기도 하지만, 언젠가 그 기억들을 호출하고 싶을 때 할 수 없다면 더 답답하지 않을까. 저 깊은 곳 저장소에 넣어 둘지, 가까운 메모리에 담아 둘지는 선택의 몫이고, 더 나아가 그 기억들을 영구삭제 할지도 선택의 몫이지만 말이다.

 

 

기억을 지워주는 업체(?)이름 LACUNA는 '잃어 버린 조각, 파편'이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잃어 버린 기억을 재생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때로는 기록이 남아 있으면 유용하기도 하다. 사진이 되었든 편지가 되었든 일기가 되었든, 하다 못해 함께 나눈 챗팅이 되었든 SNS답글이 되었든 그 기록들은 당장은 보기 싫어도 훗날 유용하다. 기록은 기억보다 위대하고 정확하다. 영화에서도 기억을 지우기 위한 방법으로 그 지우고 싶은 대상과 관련된 물건, 기록들을 가져와서 연상하게 한다. 조엘의 일기와 일러스트레이션, 선물 등등이 등장한다. 어쩌면 이 영화가 내게는 그런 기록의 파편 중 하나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진심으로 사랑한 것은 사실이었고, 지금도 그 마음의 본질은 바뀔 수 없기 때문이다. 현실화 된 이별 후에 찾아 드는 추억과 기억들이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애써 밀어 내지 않기로 했다. 기억이 나면 기억이 나는 대로 생각이 떠올려 지면 떠 올려 지는대로 하기로 하였다. 언젠가는 그마저도 희미해 질 것이고 그 희미해짐이 아쉬울테니까 말이다.

신이 기도를 들어 주어 기억을 지워주고, 그래서 소망할 것이 없게 된 포프의 시에 나오는 신녀는 행복했을까? 나는 그 것을 행복한 삶이라 부를 수는 없을 것 같다. 현실가능하지 않아도 소망하는 것이 있는 아픈 기억, 차라리 그 것을 품고 가는 것이 살아가는 이유가 되지 않을까. 혹여나 언젠가 다시 만나 아프고 아픈 삶일 것이라는 것 알아도 그저 'O.K.'하는 그런 소망의 실현이 행복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잘 기억하고 있다가, 정말 바라고 바라던 대로 한번만 다시 많나게 되면 너무 늦지 않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은 가을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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