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 읽기

[영화리뷰: 오피스(2015)]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공포 - 상실

by 박 스테72 2015. 9. 19.


오피스 (2015)

Office 
6.6
감독
홍원찬
출연
고아성, 박성웅, 배성우, 김의성, 류현경
정보
스릴러 | 한국 | 111 분 | 2015-09-03
글쓴이 평점  

 

 

이미례는 제일F&B라는 식품회사의 5개월차 인턴사원이다. 광주에서 줄 곧 지내오다 서울 취업을 위해 인근교외 지역에 싼 월세방을 얻어 매일 여행길 같은 출퇴근을 반복하고 있다. 익숙해 질만 하지만 늘 출근 시간에 쫓기어 아슬아슬하게 지옥철을 탄다. 가래침 처럼 겨우 내뿜어져 플랫폼으로 내려 선 뒤 부터는 지각을 면하기 위해 달려야만 한다. 정말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도착한 사무실은 공기가 어수선하다. 지난밤 일가족 망치살인사건의 범인이 자신이 속한 영업2팀 김병국 과장이라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부장으로 부터 듣는다. 경찰들이 찾아 와 인턴인 자신까지 탐문하여 조사를 하고, 사무실의 분위기는 좀처럼 나아지기 힘들어 보인다. 별 볼일 없는 인턴인 자신에게 늘 관심있게 친절하던 김병국 과장의 살인의 동기가 무엇인지, 진짜 과장이 살인범인지 깊게 생각해 볼 틈은 없다. 이번 달 말까지 정규직원 채용 심사를 위한 보고서를 작성해 내어야 한다. 5개월 동안 성실히 임하였고 인사부 과장님도 별일 없으면 채용될 것이라 언지를 주었지만, 최근 같은 팀에 입사한 스팩좋은 인턴 때문에 불안을 좀처럼 떨칠 수 없게 된다.

이미례는 이번 달에 정규직 채용을 결정지을 수 있을까? 김병국 과장이 정말 자신의 가족을 살해한 사이코패스일까? 그리고 그 사라진 김병국 과장은 어디에 있을까?

오랫만에 '공포'영화를 보았습니다. 솔직한 고백으로 공포스런 영화를 잘 못보는 편입니다. 깜짝 놀라고 급습하는 무서운 감정도 그러하지만, 그러한 감정을 알면서도 겪어 내야 한다는 것이 불편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가끔은 영화보다 더 공포스런 삶을 생활을 일상을 경험하기도 한다는 것을 이번 영화 '오피스'를 보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영화는 공포스럽습니다. 호러영화나 잔혹 스릴러의 문법은 보이지 않으나 공포스럽습니다. 그것도 알면서도 겪는 공포가 삶속에서도 그대로라는 것을 말해 주기때문에 더 공포스럽습니다.

영화에서 '사건'으로 말하여 지는 '살인'의 장면은 사실 그렇게 잔혹하거나 끔찍하게 묘사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그 살인의 과정이 사건을 이루는 인과의 설명이 많이 축약되어 엽기적으로 보이는 것이 공포감을 배가 시킵니다. 영화의 첫 장면인 김병국 과장의 가족 살인 장면부터 그러합니다. 살인의 이유를 말하지 않습니다. 여느때와 같이 축 늘어진 어깨로 가장 김병국은 노모와 처자식이 있는 집으로 퇴근을 합니다. 늘 그러한 것 처럼 노모에게 인사하고 몸 불편한 아이의 인사를 받습니다. 아내가 차려낸 별다를 것 없는 저녁밥상을 깨끗이 비우고 TV앞에 모여 앉아 과일을 먹습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옷을 갈아 입지 않은채였다는 것뿐입니다. 그 때 아내가 '옷 좀 갈아 입지.'하는 소리에 최면에 깨어난 사람처럼 신발장 어딘가에서 망치를 꺼내어 들고 자신의 가족들을 내려 칩니다. 가족사진에 흩뿌려지는 핏방울이나 망치에 부서지는 뼛소리가 공포스럽기 보다, 별다른 긴장과 주저 없이 일을 치르는 김병국의 모습이 공포스럽습니다.

영화의 장르적 공포는 거기까지였습니다. 이 다음 장면부터는 영화의 이야기에 사회와 삶의 모습이 겹쳐 보이기 시작하여 공포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김병국이 끔찍한 살인을 끝내고 숨어 든 곳은 다름아닌 자신의 사무실 '오피스'였습니다. 여기에서 김병국의 준거적 기준이 어디에 있는가가 드러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칸막이 책상틈에서 해뜰 때부터 해지고 한참 후까지 '오피스라이프'를 경험한 사람들은 아마 공감을 하게 될 부분이 아닐까 합니다. 일반적인 샐러리 맨이 하루중 눈 떠 있을 때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은 바로 자신의 오피스이기 때문입니다. '오피스와이프'라는 개념이 떠돌기도 하듯 오피스라는 공간은 자신의 '집'보다 훨씬 익숙한 장소이고, 편한 장소이고, 아마도 중요한 장소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저도 15년 넘은 오피스라이프를 경험하면서 비슷한 생각을 많이 하였습니다. 일에 치이고 상사의 눈치에 밟히고 위아래 좌우에 동료인지 경쟁자인지 알 수 없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공간이기는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공간은 매우 소중하고 편한 공간이기도 합니다. 이따금 휴일에 잔업을 핑게로 가족의 부대낌을 피해 오피스로 피난을 오던 기억도 납니다. 편하게 책한권 읽을 수 있는 공간이었고, 텅빈 회의실에서 밀린 영화를 오롯이 감상할 수 있었던 공간이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공간은 분명 샐러리맨에게 중요한 준거적인 의미를 주고 있을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틈에 영화에서는 자세히 설명되지 않은 김병국 과장의 사건에 대한 동기와 이유를 가늠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가장 중요한 공간인 오피스를 떠나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여 견딜 수 없는 절망을 느꼈을 것입니다. 세상 모든 것을 잃었다 생각했을 것입니다. 되돌릴 수 없다면, 그렇게 만든 사람을 가만 둘 수는 없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결심했을 것입니다. 자신을 해고한 사람들과 자신을 업신여기고 따돌린 사람들을 죽이고 자신도 자살하려고 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후에 걸림돌이 되는 가족부터 정리하는 것이 순서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가족들에게 가장은 중요한 존재이지만 그것은 그가 오피스에세 일할 수 있는 그 때만 그러할 것이라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사건을 일으킨 주체가 김병국 과장이라는 확신에서 다른 사람일 수도 있다는 의심으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오피스'라는 공간에 대한 준거적 집착이 가장 적을 것 같은 인턴 사원 이미례에게 김병국 과장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팀원들이 점심시간 따돌리는 장면에서 더욱 확연하게 보이게 됩니다. 하지만, 정작 이미례는 김병국 과장이 좋고 착한 사람일 뿐입니다. 자신은 그런 사람보다 일 똑 뿌러지게 하는 홍대리나 자신의 인사권을 쥐락펴락하는 부장의 눈에 들고 싶을 뿐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녀에게서 김병국 과장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김병국 과장도 그러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례 본인도 부정하고 싶지만 결국 그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런 시점에서 '회사'라는 공간에 대한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졸업하던 때는 IMF사태라는 국가적 숙제를 안고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20여 차례의 면접을 보러 다니면서 청계천 변을 걸으며 높이 솟아 오른 빌딩들을 보면서 생각하였습니다.

'저기 많은 창들 만큼 많은 회사가 있을 것이고, 그 만큼 많은 사람들이 있을 텐데... 내가 앉을 책상은 어디에도 없는 것 같구나.'

국가지원 인턴제라는 것을 시작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몇 번의 이직으로 하고 한해 한해 하루살이의 마음으로 직장생활을 이어 왔습니다. 늘 자리와 위치에 대해 고민을 하였고, 동료들의 빠른 승진에 분통이 터지기도 하였으며, 해결할 수 없는 미션으로 압박하는 상사의 주문에 달리는 지하철 앞으로 뛰어 들고 싶어 질 때도 있었습니다. 누가 보면 욕할 수도 있으나 스스로 생각하기에 그리 튀지 않는 스팩에 흔하디 흔한 영어어학연수도 못다녀 왔고, 중소기업 인턴으로 시작하여 미미한 경력으로 신입공채 동료 후배들과 섞여 지내야 했습니다. 그 때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누구보다 열심히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열심히 한다는 것은 어쩌면 스스로 자격지심에 대한 고백이 되어 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직장 상사 보스의 18번 레파토리 일수도 있지만, '열심히 하는 것은 알겠지만 결과가 안나오잖아.'라는 질책은 정말 괴로운 것이었습니다. 영화에서 화장실에서 울고 있는 이미례에게 선배가 건네는 이야기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미례씨 너무 열심히 하지마. 대충 대충 설렁 설렁 그렇게 하는거야. 너무 열심히 하면 티나. 무언가 부족해서 감추려고 저렇게 열심히 하는구나 하고. 알겠지?"

그렇게 열심히 아웅다웅 바둥대면서 지키고 싶은 것은 바로 자신의 공간, 그저 미팅 준비를 위해 복사하고 스탬플러를 각 맞추어 찍어 내는 그런 일을 하더라도 내 책상과 의자가 있는 공간, 오피스였을 것입니다. 만년과장 김병국에게도 지방대 출신 인턴 이미례에게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누군가 그러한 공간을 빼앗어 낸다는 것은 당사자에게 끔찍한 일일 것입니다.

정치적 사회적 관심을 최소화하는 요즘입니다. 하지만, 요즘 노사정 합의니 취업대책이니 노동 유연화니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울컥대었습니다. 그저 기묘한 숫자로 오묘한 표현으로 취업과 해고, 정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그것을 대의적 관점이라는 해석으로 관철시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자리라는 것은 어쩌면 한사람의 월급을 주고 안주고의 문제만은 아닐 것입니다. 자신에게 소중한 공간 '오피스'를 잃은 사람들은 어쩌면 모든 세상을 잃은 것 같은 절망을 맞이하게 되고, 현실적으로도 희망없는 삶을 살아 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삶을 선택하느니 더 이상 부양할 수 없는 가족을 보내고, 그동안 꾹 눌러 참았던 사람들에게 복수의 칼을 겨누는 것은 범죄의 합당성을 떠나 공감할 수 있는 마음입니다.

엽기적이고 비현실적인 것만 같은 공포영화, 하지만 이 공포영화가 공포스러운 것은 사건의 잔혹함이 아니라 사건을 일으킬 수 밖에 없는 상실감이 너무나도 현실적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것도 소중한 내 '공간'의 상실은 빼앗긴 사람에게도 그 주변 사람 모두에게도 공포스럽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