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은 아들 세자를 뒤주에 가둔다. 아들 세자가 온갖 비행을 일삼고 역모를 도모하였다는 이유로 뒤주에 가둔다. 내관을 칼로 내리쳐 죽이고, 무덤을 만들어 관속에 누워 비구니와 무당을 불러 굿판을 벌이고, 세자의 의무를 다하지 않고 낮부터 기생들과 술을 퍼마시는 등 세자의 기행은 누가 보아도 용서하기 힘들어 보인다. 오랜 기간 왕좌를 지켜낸 노련한 왕은 그런 세자를 국법으로 다스려 참수하거나 사약을 내리지 않고 광인으로 몰아 뒤주에 가둔다. 뒤주에 갖힌 아들은 일곱날을 버티다 이내 숨을 거둔다. 아들을 죽음으로 몬 왕은 개선가를 울리며 경희궁으로 환궁한다.
비극적인 이야기는 행복한 일담 보다 기억에 오래 남는다. 역사의 사건과 사실도 마찬가지이다. 조선왕조 600년을 누군가 '왕의 잔혹사 600년'이라 일컫기도 하였다. 영조와 사도세자의 관계는 그 중에서도 손가락에 들만큼 비극적이고 기괴한 사건임에는 분명하다. 영화는 그런 비극적이고 비참한 사건의 날을 헤아리며, 아버지 영조와 아들 사도세자가 왜 이 지경까지 올 수 밖에 없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영화의 영어 제목인 The Throne이 암시하듯 조선왕조 600년 동안의 평탄치 않은 왕위의 계승과 그를 둘러싼 군신의 갈등 그리고 왕족내에서의 고뇌를 이 가장 비범한 이야기로 압축하여 말하고 있다.
"왕에게 아들이란 원수와 같은 존재가 된다."
임금이 되지 못한 왕자는 죽기마련이라는 금문율이 조선왕조에는 내려 오고 있었다. 조선 개국 자체가 쿠테타로 일어난 정통성을 확보하기 힘든 시작이었고, 그 개국을 이루어 낸 태조 이성계 다음 선위 부터 심상치 않은 진통을 겪게 된다. 그래서 조선왕조에서 왕위의 무게감이나 존엄은 무엇보다 혈통의 정통성이 중요한 것이었다. 45년 동안 왕위에 있었던 아비 숙종의 아들로 태어난 영인군(영조)의 삶도 본인이 무언가 결정하기 이전에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게 된 이유가 바로 정통성, 즉 적통에 대한 '떳떳하지 못함'이었다. 천한 무수리의 아들로 태어난 그가 당파싸움의 한 가운데서 왕위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그 정통성에 대한 도전을 정면으로 받아 내지 않고, 대세의 기운을 따르고 때로는 타협하며 이루어 낸 빛깔 좋은 '탕평책' 덕분이었을 것이다. 그런 영조가 가장 바라는 것은 자신 후대의 임금 만큼은 적통의 왕세자였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사도세자는 탄생부터가 NG였다. 병든 중전은 후사를 생산하지 못하고 가장 정을 많이 나누었던 영빈 이씨에게 얻은 아들이 사도세자였으니, 숙종의 본처가 아닌 숙빈 최씨에게 태어난 자신의 출생과 다를 것이 없던 것이었다. 영조는 사도세자의 탄생 때 부터 사도에게는 왕위를 물려 줄 수 없다 생각했을 것이다. 새로 얻은 중전이 왕자를 생산해 주던지, 아니면 사도세자의 아들 세손이 물려 받는 것이 더 '떳떳한' 양위라 생각하였을 것이다. 세손은 어찌 되었든 왕위 계승자(사도세자)와 그의 정실부인(세자빈) 사이에 태어난 적통이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아비의 마음이라는 것이 처음부터 그러했을까 하는 생각이 파고 들었다. 이 시점이 바로 영조의 평생되는 고뇌와 갈등이 아니었을 것이다. 사직을 지키고 왕권을 강화하여 신하들에게 휘둘리지 않는 왕실을 만들어야 하는 임금으로서의 생각과 그래도 나를 닮아 태어난 아들에게 모든 것을 물려 주고 지원하고자 하는 아비의 마음이 서로 부딪혔을 것이다. 그래서 이따금 신하들의 마음을 떠 보려 툭하면 임금노릇 못하겠다 파업을 선언하고, 아들 사도세자를 대리청정도 시켜 보고 이런 저런 절충책을 간구하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전히 영조의 마음에 큰 소용돌이가 치고 천둥과 비바람이 매일 불어 대었을 것이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둔 영조의 마음은 예수를 십자가에 매단 빌라도의 마음과 닮아 있다. 영조는 어려운 결정이 듣기 힘든 말을 들은 날에는 귀를 씻고, 빌라도는 예수를 십자가형에 처하라 명하고 손을 씻는다.
"허공으로 날아간 저 화살이 얼마나 떳떳해 보이냐."
아들의 가례에 참석도 못한 사도세자는 며느리의 첫인사를 활쏘기 궁터에서 맞이한다. 과녁을 향해 시위를 당기던 사도세자가 이내 활을 치켜 들어 허공에 활을 쏘아 대며 아들 세손에게 말을 건넨다. 사도세자가 생각한 '떳떳함'이란 아비 영조가 생각한 '떳떳함'과는 달리 보인다. 사도가 생각하는 '떳떳함'이란 누군가 정해 놓은 과녁에 명중을 해야 하는 화살의 운명이 아니라 그저 허공을 가르며 날라갈 수 있는 자유로운 영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사도세자에게 왕위도 정통성도 다 부질없는 것이라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저 자신의 어미와 아비 그리고 자신의 아들과 아내가 서로를 사랑하며 살아가고 늙어 가는 그런 떳떳하고 소박한 삶을 절실히 원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서로를 신뢰하고 계속 사랑하고 사랑하는 것, 그런 사랑을 원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은 그런 사랑보다 왕실의 정통성을 위해 비극적인 제물이 되기를 주문하고 있다. 아들 정종이 즉위하고 아비 사도세자의 무덤을 찾아 '떳떳한 아들이 왔으니 편히 잠드소서.'라고 죽은 아비의 영혼을 위로한다. 사도세자의 죽음으로 아들 세손은 떳떳한 양위자로 세자가 되고 바로 정통성을 가진채 즉위하게 된다. 역사 속의 영조, 정조 시대의 많은 업적과 태평세는 그러한 사도세자의 죽음으로 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영화 '사도'는 슬픈영화이다. 사도(思悼)의 뜻이 말해 주듯 영화는 슬픔을 생각하게 만들어 준다. 아비가 아들을 죽음으로 몰고가는 비극적 사건자체로도 충분히 슬프지만, 그 슬픔을 거름으로 산자들이 살아갈 명분을 만든다는 것도 매우 슬픈일이다. 그것도 남도 아닌 가족, 친족이라 하는 사람들이 그 명분을 도모하고 한 사람을 비극적인 죽음으로 몰아 간다. 계산적으로 이런 도모는 분명 최적의 최선의 선택이 될 수 있었다. 한사람이 밟히고 묻힘으로서 얻게 되는 '떳떳한 명분'과 그로 인한 자신들 연명의 보장이야 말로 인간으로서 선택할 수 있는 합리적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다. 죽어 간 사람의 사후에 감사하고 미안해 하고 애통해 한들 죽은자는 말이 없다. '슬픔'을 미리 생각하고 이른 결정을 하기 전에, 조금 힘들어 지겠지만 모두 살아 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모두에게 그러하라고 주문하는 것은 무리이지만, 적어도 가족은 그리해야 한다. 떳떳한 죽음은 어쩌면 이 세상에는 없는 것이다. 함께 살아 보려한 사랑이 있었다면 떳떳한 삶만이 남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사랑이라 이야기한다. 영화중에도 사도가 이야기한 사랑, 서로 신뢰하고 지켜 주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영화는 슬픔을 내세워 사랑을 떠올리게 하였다. 내 앞에서 사라진 그 사람의 그림자에 슬퍼하기 전에 그 사람과 함께 살아 보려 얼마나 노력하였는지 스스로 생각해 보게 되는 영화 '사도'였다.
"어찌하여 너와 나는 마지막 순간에 다다라서 이런 이야기를 나눈다 말인가."
** 사족: 영조의 죽음 후 내관이 지붕위에 올라가 용포를 흔들며 초혼을 하는 장면에서 나온 궁궐 석가래는 시멘트 미장이 각지게 잘 되어 있어서.. 순간 웃음이 나왔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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