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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읽기

수다 (2011)

by 박 스테72 2015. 9. 6.

아주머니들의 수다의 몰입이란 때론 대단하다.

병원과 지하철을 오가는 셔틀버스 안이었다. 막내 이모뻘 되시는 아주머니들께서 좌석에 엉덩이 붙이기 전부터 이야기 꽃을 피우셨다.

내용에 특별함이 있겠냐마는 매번 등장인물만 바뀌는 남편 흉보시고, 취직 안되는 아들 욕하시고, 친구아들, 친구남편 자랑이야기에 한창이셨다.

그러던 중에 누군가에게서 전화가 왔다.

 

"누고?"

"그런데?"

"알았다. 고마 끊으라."

 

재잘거리듯 통통 튀는 생기발랄한 목소리는 온데 간데 없고, 학창시절 통지표 받은날 어무니 목소리처럼 냉냉하고 꺼칠거렸다.

주어도 목적어도 등장하지 않는 대화라 알 수는 없지만, 추측컨데 오랫동안 돈 안 갚는 친구이거나 실업급여로 연명하는 남편이거나 혹은 아직도 캥거루 마냥 손벌리는 예비역 장남녀석이였을 것이다.

 

그런데 놀라게 된 것은 그 후의 일이었다. 얼마걸리지 않았다.

아니 시간으로 측정하기 어려울 정도의 쉼표를 뒤로하고선 다시 수다에 몰입하신 것이었다. 꺼칠거리고 차가운 목소리는 어디로 집어 넣으셨는지 찾을 수 없었다.

잠깐의 주춤거림을 만회라도 하듯 내던지는 단어는 빨라지고, 꺄르르 데구르 맞장구까지 치신다.

마치 희극배우가 슬픈 소식을 접하고선 잠시 숨고르고 준비된 웃음을 짓는 것과도 비슷했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아마도 이렇게 자신의 아프고 멍든 곳을 드러내 보이기 싫으셨나 보다.

중요하지 않은 주변의 잡담거리로 그렇게 고달프고 답답한 하루 하루를 버티고 계셨나 보다.

입을 쉴세없이 놀리고 계시면 구질거리는 일상을 떠 올리지 않아도 되어서 그러셨나 보다.

그것이 자신의 인생도 꿈도 모두 양보해야 했던 우리 어머니 세대의 자그마한 버팀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창 시절, 머무니의 길고 긴 전화통화를 이해하지 못해 짜증 부렸던 내가 떠올랐다.

화끈거리는 낯빛이 말하듯 부끄러웠다.

지킬 수 있지 모르겠지만, 시커멓고 멋대가리 없는 아들만 두신 어무니의 수다 상대가 되도록 노력은 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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