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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읽기

[영화리뷰 : 나를 찾아줘 (happy Anniversary 2014)] 나 보다 날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

by 박 스테72 2015. 9. 6.

 

 


나를 찾아줘 (2014)

Gone Girl 
7.6
감독
데이빗 핀처
출연
벤 애플렉, 로자먼드 파이크, 닐 패트릭 해리스, 미시 파일, 킴 디킨스
정보
스릴러 | 미국 | 149 분 | 2014-10-23
글쓴이 평점  

닉과 에이미는 누구나 부러워 하는 삶을 살아가는 완벽한 커플이다.
그들의 결혼 5주년 기념일 아침, 에이미가 사라졌다. 유년시절 어린이 동화시리즈 '어메이징 에이미'의 실제 주인공이기도 했던 아내의 실종은 세상을 떠들석하게 만든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이름없는 대중들은 그녀의 실종을 애도하고 남편인 닉을 위로하기도 한다.

경찰은 에이미가 결혼기념일 마다 했던 탐정놀이 처럼 남겨 놓은 편지와 함께 곳곳에서 드러나는 단서들로 남편인 닉을 용의자로 몰아 간다. 세상의 온갖 미디어는 살인자 남편을 집중하여 쫓아 다니게 되고, 세상의 관심도 매정하고 악랄하게 아내 에이미를 살인한 유력한 용의자 남편 닉에게 쏟아 지게 된다.

에이미는 사라진 것일까? 살인을 당한 것일까? 그렇다면 남편 닉은 아내 에이미의 살인범일까?

'쇼윈도우 부부'라는 말이 있습니다. 겉으로는 세상의 잣대로 견주어 부족함이 없어 보이고 둘도 없는 애정과 신뢰로 이어진 부부관계로 보이지만, 실제 그들의 부부관계는 아무런 감정조차 남아 있지 않거나 아슬아슬한 관계를 빗댄 말입니다. 아마도 톨스토이가 안나카레니나 서문에 짧게 넣은 '행복한 가정은 고만고만 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이다.'라는 말로 대변되는 그런 부부관계를 말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부부의 관계나 오래된 연인의 관계는 높은 빌딩 사이을 외줄 타듯 늘 아슬아슬한 관계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영화는 이런 '쇼윈도우 부부'의 치정과 갈등을 다소 심각한 사건으로 표현하는 스릴러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얼핏 브란젤리나 커플의 '미스터 앤 미스 스미스'나 설경구, 김태희의 '싸움'같은 영화처럼 다가오기도 합니다. 부부간의 갈등을 외부로 드러내어 내면의 문제를 해소하는 결말의 영화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데이빗 핀처의 '나를 찾아줘'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그들의 갈등은 해소되지 않고 그저 합의하고 타협하며 마무리됩니다. 내면에서 일어나는 감정과 판단의 왜곡을 애써 바로 잡지 않고 세상에서 가능할 것 같은 외부의 타협으로 일단 마무리하는 그런 이야기 입니다.

 

영화를 보는 입장에서 누군가는 남편 닉의 입장에서 바라보게 되고, 누군가는 아내 에이미 입장에서 바라 보게 됩니다. 꼭 남성과 여성의 젠더로 선긋기를 하여 역할극에 감정을 이입하는 것은 아니더라고, 각자의 입장에서 유사한 상황에 놓인 쪽을 공감하게 됩니다. 남편 닉이나 아내 에이미 보두 절대적으로 선한자, 악한 사람도 완전한 피해자, 가해자도 구분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 모두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노라면 이 두가지의 양면은 모두 지니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에이미 입장에서 닉은 실망과 배신을 안겨 준 용서할 수 없는 인생을 망친 남자입니다. 매사에 성실하지 않고 있는 직장마저 실직을 거듭하고, 통장 잔고마저 부실하며 더우기 젊은 여자와 바람을 일삼는 그런 남자입니다. 거기에 남편 닉은 조절 안되는 폭력을 표출하고 아기를 원하는 에이미를 밀어 냅니다.어찌보면 이 모든 사건은 에이미의 '복수'라고 불리워 질 수 있을만큼 에이미 입장에서는 당위성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만약에 에이미의 일기와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말입니다. 하지만 닉의 입장에서는 아내 에이미는 무서운 여자입니다.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를 소재로 쓴 밀리언셀러 '어메이징 에이미'의 모습은 실제 그녀의 인생과는 동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렇듯 그녀도 일기를 처음에는 닉에 대한 분노로 사실을 위주로 적어 내리다 이내 바라고 원하는 바로 창작하고 윤색하게 됩니다.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어디서 부터가 그녀가 지어낸 이야기인지 모호해 집니다. 그리고 에이미가 닉에게 말하고 닉 또한 방송 인터뷰에서 고백 아닌 고백을 하게 됩니다.

"저는 에이미가 아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를 놓치기 싫어서 그녀가 원하는 모습으로 스스로 꾸며 살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다 보면 그렇게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사실 사회적으로 파장이 큰 어마어마한 사건을 두 부부는 저지르고 경험하게 됩니다. 핀처의 영화에서는 그 사건의 당위성을 찾거나 감정적인 갈등을 해소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저 그 무시 무시하 사건은 지나고 보니 삶 속에서 지나가는 해프닝에 불과하게 되어 버립니다. 닉이고 에이미이고 본인들이 저지른 일들과 생각에는 반성하거나 뉘우침은 없습니다. 그저 상대방이 지금의 나를 무너뜨리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서로에게 강하게 요구하는 그 뿐입니다. 닉이 고용한 아내 살인용의자 전문 변호사는 닉에게 항상 이야기합니다.

"두 사람 정말 대단해요. 정말 무서워요."

'쇼윈도우'는 부부관계의 모든 단면을 보여 주지 않습니다. 구매 가망자가 보고 싶어 하는 면을 부각하여 각도를 배치하고 조명을 비추어 놓습니다. 영화에서는 미디어가 그리고 익명 대중의 반응이 그런 쇼윈도우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쇼윈도우 안에 머물러 있는한 완벽한 갈등의 해소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갈등과 그 갈등의 해소 마저 쇼윈도우 위에서 이루어진다면 당사자들의 진심은 점점 상관없게 되어 버립니다. 대중의 눈높이에 맞춤 결론을 내어 버리고 그 결론 위에서 앞으로의 일들을 계획하고 진행하게 됩니다. 이제 쇼윈도우 안에서는 자기만의 진솔한 삶도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부부관계가 아니더라도 함께 인생을 동반하는 사람과의 갈등은 불가피하게 발생하게 됩니다. 문제나 갈등을 절대 일으키지 않으면 좋겠지만, 그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문제나 갈등을 바라보는 각자의 모습일 것입니다. 불행한 일들이 나름나름 다가오면 대부분 그 문제에 대한 이유를 내가 아닌 상대방을 가리켜 보게 됩니다. 그 사람으로 인해, 그녀로 인해 내게 불행이 온 것 마냥 주변 사람에게 아픈 내마음과 그간 하나 하나 느꼈던 상대방의 추하고 부족한 면을 일일이 내뱉어 내곤 합니다. 그것이 복수이든 아니면 꽉 막힌 홧병의 해소인든 무언가 해야만 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저 내가 피해자가 되면 되겠다는 임시방편의 가림막을 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가림막 안으로 쇼윈도우 안으로 숨어 버리곤 합니다.

내가 아닌 누군가와 인생을 공유한다는 것은 중요하고 어려운 일입니다.
어려운 결정을 한 그 사람이 행복하고 편안하다면 나 또한 행복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문제가 일어나고 사건이 생길 때, 나와 함께 인생을 공유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먼저 바라 보아야 합니다. 나와 공유한 삶 속에서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구분은 얼토당토하지 않습니다. 그저 나와 나의 동반자가 있을 뿐입니다. 그 사람을 손가락질해 밀어 내면 그저 쇼윈도우에 덩그라니 남겨진 거죽같은 삶만 남아 있을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그건 사랑이 아닌 것입니다.

'자기애'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말은 걱정하거나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사랑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을 향하고 있는 자기자신에 대한 애정을 말합니다. 나의 상대가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그 사람의 진정한 아픔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걱정하는 내 모습이 중요한 것입니다. 지나간 사랑을 그리는 마음도 비슷하지 않을까 합니다. 지나간 사랑이 내 앞에 나타난 들 그 때 그 사랑이 다시 시작되기는 어렵습니다. 내가 사랑하고 기억하고 추억하는 것은 그 시간에서 그 사람을 사랑하던 '나'의 모습일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나'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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