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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읽기

나는 X세대이다.

by 박 스테72 2015. 9. 6.

나는 ‘X세대’이다.

1.

요즘 들어 세상에서는 다시 ‘세대’에 대한 고찰이 본격화되고 있는 것 같다. 7080세대, 2030청년세대, 낀 세대, 쉰 세대, 87년세대, 386 혹은 486 세대…… 현실적인 이유는 아마도 총선과 대선, 그것도 중대선거로 발전될 가능성이 많은 정치적 결단의 시기이기도 하고, 전반적인 세계관 형성의 변화의 시기이기도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변화의 중심에서 세대의 생각과 특징을 집어 내는 것은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1972년 생이다. 올해 만으로 41, 마흔하나가 되었다. 2010년 인구조사 통계에서, 나와 같은 해에 태어나 아직 생존한 대한민국 거주 인구의 숫자는 90만명으로 집계되었다. 같은 세대라고 하는 1971년생이 95만명으로 연도별 인구 중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할 만큼, 나와 나의 주변세대는 정말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드러나는 현상이나, 세대별 고찰의 관점에서 우리의 세대는 ‘이상하리만큼’ 존재를 찾기 힘들다. 사라져 버렸다. 관심 받지 못하고 소외되고 있다.

 

2.

87년 체제의 주인공이라고 불리는 386세대를 앞세우고, 현재의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주요 소비자가 되어 버린 밀레니엄 세대를 뒤로 하고선, 그만 존재감을 상실해 버렸다. 나의 세대를 대표하는 ‘세대대표’의 인물을 찾기도 힘들며, 나의 세대를 겨냥한 ‘특별 우대’식의 마케팅도 존재하지 않고, 정치권조차 청년과 장년 사이에 애매하게 끼어 있는 나의 세대에게 틈을 주지 않고 있는 것이다. 나와 나의 동시대의 그들은 어디로 숨어 버린 것일까? 아니면 숨겨 버린 것일까? 숨어 있던지, 숨겨져 있던지 왜 세상 밖으로 소리 내며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이런 생각들이 요즘의 ‘세대론’을 마주하며 자주 스며 들게 되었다. 그리고 찾고 싶었다. 나의 세대를, 그리고 나의 세대가 서 있을 자리를, 잃어 버린 목소리를 말이다.

 

사실 나의 세대를 콕 집어 주목한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내가 성년이 된 1990년대 초반 무렵에 유행처럼 대두된 ‘X세대’가 바로 나의 세대에 대한 이야기였던 것이다. X세대란, 1991년 미국에서 출간된, 캐나다 작가 더글러스 코플랜드가 발표한 소설 『X 세대 Generation X』에서 유래된 용어이다. 수학에서 미지수로 대변되는 ‘X’에 대한 의미확장으로 지칭된 세대인 것이다. 코플랜드는 자신의 소설 속에서 기성세대의 시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자유분방한 행동을 벌이는 연령층의 젊은이들을 통칭하는 단어로 사용했다. 광고회사 제일기획이 작성한 트렌드 리포트는 X세대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었다. X세대는 “주위의 눈치를 보지 않는 개성파였으며 경제적 풍요 속에 성장했던 세대로 경제적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었던 세대”였다. 맞는 말처럼 들리면서 돌이켜 보면 그렇게 정확한 분석은 아니었던 것 같다. 어찌되었든 나의 세대도 세상세상부터 주요한 세대로 주목을 받은 적이 있었던 것이다. 단 이전 세대와 다른 것은, 아마도 그 주목의 이유와 영역에서 차이점이었을 것이다. 이전 세대의 세대정신이란 이념과 정신적 가치관이 주도하던 세대라면, 나의 세대에서는 기술발달과 물질적 가치가 세상의 기준을 선도하던 시대였다.

 

3.

유신정권 말기에 초등학교를 입학하여, 전두환, 노태우 쿠데타 정권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니게 되었고, 87년 민주화 항쟁으로 인한 민주주의의 태동의 시기에 대학생활과 성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서울올림픽을 청소년기에 지켜 보았고, ‘서른 즈음에’라는 노랫말을 곱씹어 생각하기에도 버거운 2002년 월드컵 때에 서른을 맞이하였다. 군복무 시기에 김일성 사망을 겪고, 졸업시기에 IMF 외환위기의 소용돌이 속에 월 10만원 교통비와 50만원 정부보조금 인턴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뿐인가? 교복을 한번도 못 입어 보았고 (물론 사립초등학교를 다닌 친구나, 사립고등학교를 다닌 친구들은 예외지만), 살짝 한 펌은 허용이 되는 두발자율화의 세대였으며, 보습학원이나 대학생과외 등이 전면 금지된 사교육 금지세대였다. 자율학습과 보충수업의 전성기에 전교조 선생님들을 만나 한번 버티기도 하고, 단체행동으로 학교 처벌을 받기도 하였던 세대였다. 엄청난 대학입시 경쟁률을 자랑하던 세대였으며 (재수학원 경쟁률도 매우 높았던), 재수 삼수의 시기가 애매한 경우 일본식 학력고사와 미국식 수학능력시험을 경험한 세대이기도 하고, 선 시험 후 지원과 선지원 후시험을 모두 치러 볼 기회도 있었던 세대였다.

 

문화의 현상에서는 개방과 물질, 기술의 발달로 급격하게 팽창되는 모습을 목도하던 주요 소비계층이기도 하였다. 이전 성인 중심의 가요와 청년세대 중심의 포크, 록 문화에서 발달하여, 소위 말하는 ‘대중가요의 시대’를 만든 세대이기도 하다. ‘별이 빛나는 밤에’등의 라디오 프로그램이 성행하였고, LP판의 유통을 주도하였고 그로 인하여 가격폭등으로 인한 곤혹도 겪은 세대였다. 팝송과 가요가 공존하던 세대에서 가요로의 무게 중심이 이동시킨 세대였으며, 장르에서도 발라드와 댄스의 양대 산맥을 형성시킨 소비자들이었다. ‘유재하’, ‘어떤날’을 가슴에 묻고 서태지를 받아 들인 세대였다. 본격적인 프로 스포츠의 태동기에 어린이 팬으로 함께 시작한 세대였고, 올림픽과 월드컵을 가장 순수한 입장으로 받아 들인 세대이기도 하다. 비디오 시장의 주요고객에서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를 주도하였고, 공연이라는 문화상품이 시장성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 준 세대이기도 하다.

 

중고등학교 시절 워크맨의 최대 사용자였으며, 성년이 되면서 삐삐, 모바일폰의 얼리 어댑터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였던 세대이다. 손으로 쓰던 리포트에서 워드프로세스로 프린트 하던 변화하던 중간에 서 있던 세대였으며, 인터넷 통신부터 인터넷 태동기까지 정보통신 기술의 본격적인 시작에 함께 하였다. 그 뿐 아니라, 현재 한국 IT산업 종사자 중 최대 비중을 차지하는 세대이면서, 그 IT시장의 영욕을 함께 하였던 세대이기도 하다. 해외여행 자율화 시대를 맞이하여 어학연수, 배낭여행의 선봉에 서 있었고, 주5일 근무시대에서 소위 레저 여가의 주요 소비자로 등극하였다.

 

4.

정말 변화의 물살 한 가운데 놓여 있었던 세대였던 것이다. 이러한 세상의 급격한 변화는 나의 세대에게 탁월한 적응력을 우성인자로 새기어 놓기도 하였지만, 반대로 무한경쟁으로 인한 강한 개인주의적 세계관으로의 전향을 가져다 주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나의 세대의 지금 모습은 어떠한가? 세상의 실질적인 경제, 사회 영역에서 ‘엔진’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통상 기업에서 중간관리자로 실무와 매니지먼트의 교량역할을 하며, 가장 효율성 높은 리소스로 활용되고 있다. 또한 정부시책이나 사회의 요구사항에 비교적 순응하는 세대, 혹은 민감한 이슈에 큰 소리내지 않는 소극적 이행자로 인식되어 ‘무난한’ 부류의 세대로 여기어 지고 있다. 늘어난 수명에 비해 일찍 퇴직한 부모를 부양해야 하면서, 엄청난 사교육 지옥에서 꺼내 주지 못할 자녀들의 양육을 위해 ‘부양자’로서의 소임을 다하는 세대이다. 정치적으로는 앞선 강한 세대 ‘386’세대의 그림자와 그들에 대한 반대급부로 소극적인 태도가 전형이 되었고, 한숨 돌려 참여할 시점에는 이미 세상에서는 효용가치를 다음세대인 N세대, 밀레니엄세대에게 찾고 있다.

 

여전히 이 사회에서 들보처럼 버티고 있는 세대이다. 여전히 이 사회의 원활한 운용을 위해 리소스로서의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세대이다. 조세 부담이 소득대비 가장 많은 세대이며, 아이러니하게 조세저항이 가장 적은 세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대는 목소리를 크게 내지 못한다. 언제 어떻게 이 세상이 또 변할 것인지 두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변화 속에서 오롯한 ‘나’의 가치는 묻혀 버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유에서인지, 이 세상도 나의 세대에게 기회와 배려의 손길을 잊어 버렸다. ‘87년 체제’의 주역으로 불리는 선배들은 그저 나의 세대를 효율성 좋은 리소스로 활용하려 하고, 후배 세대들은 딱히 두드러지게 설명하기 힘든 나의 세대를 건너 뛰어 윗 세대와 소통하려 한다. 나의 세대는 스스로의 소극적인 모습과 함께, 위 아래 세대에게서 철저히 무시되는 그런 세대인 것이다.

 

5.

작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나의 세대는 무소속 후보의 기적 같은 승리에 기여하였다. 적극적인 지지자로 활동하였고, 영향력 있는 일반인으로 참여하였다. 그리고는 참여와 지지의 숫자로 보여 주었다. 그러나, 결과는 나의 세대가 아닌 위 세대에 대한 재조명과 아래 세대에 대한 배려의 손짓뿐이었다. 386세대의 정치주역으로서의 세대교체가 두드러지고 있고, 각 정치권들은 앞다투어 ‘청년세대’에 대한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나의 세대를 대표할 세대인물은 정치계에도 문화계에도 경제계에도 찾아 보기 힘들게 되어 버렸다. 나의 세대를 위한 정책도 없고, 나의 세대를 위한 정치적 배려도 없으며, 나의 세대를 위한 사회의 따뜻한 격려도 없다.

 

최근 민주통합당은 35세 미만의 ‘청년’들에게 비례대표 전략공천을 공표하였다. 침몰하는 한나라당도 26세 리틀 MB 청년을 비대위원으로 추대하였다. 서울시는 청년유니온을 일자리 창출을 위한 카운터 파트로 삼겠다고 공표하였다. 87년 체제를 넘어 2013체제의 중심이 되자고 하면서, 386세대 선배들은 저마다 ‘젊은~’을 달고 유세 중이다. 그렇게 우리는 젊지도 능숙하지도 못한 애매한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다. 대접은 그렇게 받지만, 나의 세대에게 요구하는 세상의 주문은 너무나도 막중하다. 사실 생각해 보시라, 각 기업에서 실질적인 소득을 가져 오는 실무엔진이 어느 세대인지, 각 정치권에서 실제 입안을 하고 전략을 실행하는 행동주체가 어느 세대인지, 이 국가라는 사회를 돌아 가게 하는 주요 세원이 어느 세대인지, 꼼꼼하고 깨알 같이 살펴 주기 원한다. 그리고, 나의 세대들에게도 이야기하고 싶다. 이제 그만 숨어 들고, 그만 외면하자. 이제는 목소리 내고 주장해야 할 때이다. 아무도 대신하고 대변해 주지 못한다. 적어도 우리세대는 윗세대와 아래세대에 채무감에서는 자유롭다는 이점도 있다. 이제 우리가 대표하고 우리가 행동하는 모습이 필요할 때이다.

 

미지수 ‘X’는 종잡을 수 업는 문제의 존재이다. 하지만, 미지수 ‘X’의 참된 값을 알아 낸다면, 훗날 역사라는 채점자는 지금의 세상에, 지금의 시대정신에 동그라미 치며 ‘참 잘했어요’라고 도장 찍어 줄 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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