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스제트의 베테랑 기장 휘태커는 최근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다. 단, 노련한 비행실력과 동료들과의 교감만이 그의 일상을 채워 주고 있다. 어느 가을날 그는 102명 정원의 사우스제트 227기의 조정관을 잡는다. 하지만, 그는 전날 술과 마약으로 동료승무원과 뜨거운 밤을 보냈기에 제정신이라 하기 힘든 상태이다. 이륙부터 심상치 않은 난기류를 통과하느라 기장도 승무원도 승객도, 심지어 비행기마저 진땀을 빼고 만다. 그 후 순탄한 비행이 기대되던 중 갑자기 기체 결함이 발생하고 비행기는 급속히 고도를 상실하고 추락하게 된다. 모두의 생사를 장담하지 못할 상황에서 휘태커는 상식을 뒤집듯 비행기를 뒤집어 활공하는 기지를 발휘하여 연 불시착에 성공한다. 100% 사망확률에서 90%이상을 살려낸 영웅이 된 것이다. 하지만, 비행 중 있었던 하나의 사실, 아니 어쩌면 인생에 있어서 인정하기 싫은 하나의 비밀 같은 이야기 때문에 심각한 기로에 선다. 과연 어떤 비밀이 그에게 있는 것일까?
6시간이 넘는 출장 비행기 안에서 영화를 골라 보았다. 처음 골라든 영화는 호아킨 피닉스 주연의 ‘마스터’였다. 그의 섬찟한 연기와 신선한 충격보다 낯설고 어려움이 앞선 영화였다. 그 다음에 골라든 영화가 ‘Flight (2012)’였다. 비행기 안에서 비행관련 영화라…… 의도한 맞춤은 아니었지만 제법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하였다. 하지만, 영화는 비행과 비행기 안의 재난을 다룬 재난영화는 아니었다. 그보다 한 인간의 감추고 싶은 자신의 가장 나약한 면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마 ‘중독’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 ‘중독’이라는 것으로 인한 행동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영화의 주인공은 휘태커 기장 역의 덴젤 워싱턴이 아니라 ‘술’이 아닌가 싶다.
술, 특히 알코올중독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다룬 대표적인 영화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와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가 아닌가 싶다.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와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이다. 모두 친숙하고 유명한 배우 - 니콜라스 케이지, 엘리자베스 슈/ 맥 라이언, 앤디 가르시아 - 가 출연하고, 정말 보는 동안 구토감이 올 정도로 음주장면이 적나라하게 연출된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두 영화가 던지는 이야기는 알코올중독의 위험성이나 심각성, 또는 그 폐해라기 보다, 한 사람을 알코올 중독으로 몰아갈 수 밖에 없는 것들, 그리고 그런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타인들로부터의 외로움을 이야기하고 있다. ‘중독’이라는 사전적 의미 중에서 ‘의존성’에 의한 것이 바로 알코올중독에 해당한다며, 아이러니하게 어느 누구에게도 의존할 수 없는 외로운 사람들이 바로 ‘술’에 의존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플라이트’에서 이야기하는 ‘중독’에 대한 메시지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보인다. 사우스제트 227기의 기장 휘태커는 극심한 알코올 중독자이다. 그렇지만 그는 그의 입으로 중독자임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입으로 내뱉지 않을 뿐, 스스로 중독에 대해 인지하고 고민하고 있다. 그리고, 하루 아침에 영웅대접을 받으며 비행중의 과실처리도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 같이 예측되자, 스스로 술로부터 벗어 나기 위해 노력해 보기도 한다. 결과가 좋은 일과 사람들의 응원 그리고, 자기가 인정하지만 않으면 아무도 알 수 없는 나약하고 부끄러운 비밀마저도 쉽게 잊혀질 것만 같았을 것이다.
하지만, 비행 중에도 알코올 의존을 버리지 못한 것이 들통이 날 일이 생기고, 조사 청문회를 준비하는 과정의 압박감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는 다시 술독에 빠지게 된다. 병원에서 만난 니콜의 사랑과 조언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내 그 의존적인 중독성을 매듭짓지 못하고 만다. 영화는 그가 알코올중독에 빠지게 된 개인사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는다. 그가 사회적으로 외로움에 처하게 된 처지를 동정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알코올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스스로의 자각과 고백 그리고 철저한 자활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휘태커가 비행 중에 만취상태가 아니었다면, 비행기를 뒤집어 비행할 결정을 할 수도 없었고, 그렇다면 생존율은 90%가 아니라 10%미만으로 될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로 밝혀 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취중에, 술에 의존하는 개인적인 중독에 의한 결과로 이루어진 ‘공동선(Common Good)’은 합리화될 수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겠지만, 그 비밀스러운 일이 비록 안타깝고 안쓰러운 일이더라도 결코 정당화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 십 수년 전에 세기를 호령하던 스포츠 스타들이 줄줄이 금지약물 복용을 고백하거나 적발되어 그 명성을 통째로 날리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그의 홈런과 기록에 환호하던 팬들은 모두 등을 돌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기록은 모두 정상적인 기록으로 인정되지 않아 역사에서 삭제되게 되었다. 그리고 요즘 연예계와 일반인들 마저, 의약품 및 향정신성 약물의 중독으로 심각한 사회적 이슈를 일으키고 있다. 물론, 인명을 살린 휘태커의 재기가 취기 중이라고 숭고한 일이고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중독적인 일상은 그 보다 많은 사람을 그리고 그 사회나 공동체를 위험에 처하게 할 위험성은 더 큰 것이다. 그래서 그의 양심적인 고백은 더 숭고한 것일지도 모른다.
요즘 고백이 드문 세상이다. 탄로와 고발이 먼저 앞서서 그런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고백할 거리가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결과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과거가 모두 아름답게 전파된다. 그의 무자비한 승부욕도 아름다운 경쟁이었고, 독선적인 결정도 훌륭한 리더십이었고, 이기적인 법률위반과 조세회피도 불가피한 관례가 되고 만다. 이들은 어쩌면 자리합리화에 중독된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더 무서운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에게 아무런 비판적 사고를 하지 못하고 편드는, 돈과 권력에 함구하는 ‘무감각증’에 중독된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오지도 않을 먼 미래의 평가를 위해, 나도 나의 중독을 고백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중독이 아닐까 싶다. 그것은 바로 ‘욕심중독’이다. 난 어쩌면 그 욕심의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한 힘겨운 재활 중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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