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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읽기

[영화리뷰: 필름스타 인 리버풀 (2017, Film Star Don't Die in Liverpool)] 첫사랑, 그리고 끝사랑; 꿈을 꾸었다 말해요

by 박 스테72 2020. 2. 9.

왕년의 은막스타였던 글로리아 그레이엄(아네트 베닝)은 테네시 윌리엄스의 연극 <유리 동물원>의 무대에 올라가던 직전 쓰러지고 만다. 그녀는 리버풀에 있는 29살이나 어린 옛 연인 피터 터너(제이미 벨)에게 연락을 한다. 피터는 말기 유방암으로 이미 손쓰기 어려운 지경이 된 글로리아를 집으로 들여 보살피고자 한다. 지속되는 통증을 달래기 위해 글로리아의 등을 쓸어 주던 피터는 그녀와의 짧지만 강렬했던 지난날을 떠 올려 본다. 
나이의 차이만큼 달라도 달랐던 둘의 비범한 사랑은 처음 만난 리버풀에서 로스앤젤레스, 뉴욕으로 이어지며 누구보다 뜨거운 사랑의 시간을 보냈었다. 남다르게 뜨거웠던 사랑에도 불구하고 둘은 함께하기 어려움을 발견하고 누구나 그렇고 그런 식의 이별을 하게 되었다. 운명이든 삶에 대한 증명이든 그들은 결국 다시 함께 하게 되지만, 그 둘이 함께하든 떨어져 있게 되든 간에 그들의 미래에 직면하게 되는 어떤 운명에는 결국 타협해야 되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은막스타 글로리아 그레이엄은 사랑했던 피터와 아름다운 이별을 리버풀에서 하게 될까?

 

'왕년'의 이야기, 그 기억의 이야기

영화 <필름스타 인 리버풀>은 실존 인물들의 영화 같은 사랑이야기이다. 실제 오스카상을 수상하였던 글로리아 그레이엄과 29살 연하였던 그녀의 마지막 연인 피터 터너가 쓴 회고록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그야말로 드라마 같은 사랑이야기는 그 비범함에 비해 요란하지 않게 기억해 내고 있다. 이제 막 솜털이 거두어진 20대 후반의 배우 지망생과 전성기는 한참 지났지만 여전히 요염함과 섹시함을 유지하는 57세 천생 여배우의 사랑은 생각보다 담담하게 그려진다. 그 요란하지 않은 이야기의 전개가 현실감 없는 둘의 사랑을 전혀 어색하지 않게 보여주는지도 모르겠다. 아들보다 어린 아들과의 연애, 엄마 뻘의 여인과의 사랑이 불편하게 다가설 법도 하지만, 이들의 사랑은 분명 뜨거웠으나 구순기 어린아이의 호기심도 아니고, 소위 영계에 집착하는 욕구의 발로도 아닌 '사랑' 그 자체를 뒤돌아 본다. 그 돌아보는 사랑 안에는 깊게 페인 주름만큼 흘러간 시간에 대한 야속함도 있고, 네 명의 남편에게서 네 명의 자녀를 둔 엄마의 아련함도 있으며, 가진 것은 부족하지만 아직 건강하게 울타리를 쳐주고 있는 가족에 대한 따뜻함도 있다.

영화는 테네시 윌리엄스의 대표작인 연극 <유리 동물원> 분장실에서 시작된다. 연극 <유리 동물원>은 '기억극'이라고 불리는데, 지나간 일들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극형식을 '기억극' 또는 '회상극'이라고 말한다. <유리 동물원>은 소위 "왕년의 이야기"이다. 미국의 경제 대공황 시절, 남부의 낡고 오래된 기억의 창고에서 꺼내는 시시콜콜한 왕년, 그 왕년의 이야기인 것이다. 영화도 그처럼 기억을 꺼내면서 시작된다. 낡고 늘어진 믹스 카세트 테이프에 담긴 오래된 노래처럼 영화는 오래된 이야기로 채워진다. 1978년부터 1981년까지의 회상으로 된 시대상이 잘 드러난다.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노동자들의 거주하는 동네의 모습이 오래되었고, 뉴욕과 L.A의 모습도 '복고미'를 연상시킬 만큼 오래된 모습이다. 엘튼 존의 'Song for Guy'를 흥얼거리는 주름 깊은 여배우의 거울 깨진 화장품 케이스가 말해 주듯 그녀를 설명하는 데에는 '왕년'이라는 수식어가 필요하다. 세월이란 내가 한 번도 손수 '가거라'하고 말한 적도 없는데 저만치 훌쩍 가버리고, '내 인생 언제나 스물여덟'이라고 아무리 우겨보아도 훌쩍 커버린 아이들의 모습 자체가 어깃장을 놓는 것이다. 연극 <유리 동물원>처럼 추억 같은 기억 상자를 열어 본들 내게는 절름발이 가정 이야기뿐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어리고 어리숙한 연인의 젊은 육체만큼 기억보다 실제 하는 그의 안정된 가정이 더 마음에 들어앉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왕년의 필름스타가 리버풀에서 죽지 못하는 이유(원제가 'Film Star Don't Die in Liverppol')는 아마도 그녀는 역설적으로 따뜻한 손길이 있는 리버풀에서 영원히 살고 싶어서 일지도 모른다.

 

첫사랑, 그리고 끝사랑; 꿈을 꾸었다 말해요.

All the leaves are brown and the sky is gray
l've been for a walk on a winter's day
i'd be safe and warm if I was in L.A
California dreamin' on such a winter's day
(<California Dreamin'>중)

영화에서 회상의 장면이 들 때마다 '오래된'노래들이 등장한다. 글로리아 그레이엄이 실제 좋아했었다던 엘튼 존의 'Song for Guy'는 물론이고, 호세 펠리시아노가 부른 'California Dreamin''은 피터의 회상 장면에서 구슬프게 흐른다. 자유분방하고 활기가 넘치는 캘리포니아에서의 일상은 그 시절 답답한 하루하루에 단비 같은 공상이었을 것이다. 할리우드를 알아야 미국을 안다는 말이 있다. 할리우드는 허구를 현실의 실체로 만드는 연금술 공장 같은 곳이다. 아메리칸드림이 만들어지는 곳이 바로 캘리포니아다. 꿈을 가슴 한 켠에 지니고 있다면 캘리포니아는 약속받은 땅임에 틀림없다. 캘리포니아가 지니는 특별한 점 중의 하나는 리버럴리즘이다. 캘리포니아에서 인간 세계의 미래를 볼 수 있다는 말이 있다. 그것은 캘리포니아의 리버럴리즘이 오늘날 IT산업, 문화산업으로 스며드는데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할리우드와 실리콘 밸리를 잉태시킨 캘리포니아가 꿈만 안겨다 주는 장밋빛 유토피아는 아니다. 이민자들이, 특히 아시안계 이민자들이 오늘날 캘리포니아를 미국 최고의 부자이자 가장 강력한 주로 만들었지만 본토 미국인들, 이른바 코케지언들은 새로운 후속 이민자들, 특히 피부가 저들과 다른 아시아계 이민자들에게 늘 환영보다는 싸늘한 눈길을 보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캘리포니아에는 분명 미국 전역과 다른 그 무엇인가가 있다. 오늘날의 정보통신 세상에 대한 90년대 중반의 지나친 낙관적인 견해에 대해 ‘캘리포니아 이데올로기’라 명명하며 오늘날의 IT 산업에 대한 명과 암을 캘리포니아는 동시에 제공하고 있듯, 캘리포니아 드림은 그저 '따뜻한' 꿈일 수만은 없다.

쌀쌀하고 우중충한 리버풀의 날씨와 화창한 L.A와 뉴욕의 센트럴파크의 온도차만큼 두 사람의 사랑도 냉온탕을 오가기 일쑤이다. 천상 여배우처럼 비음 섞인 하이톤으로 애교를 쏟아내는 연인은 나이를 잊을 만큼 사랑스럽다. 아직 가진 것 없고 이룬 것 없는 무명 배우지만 남자는 그녀의 마지막 볼품없는 모습까지 보듬어 안는다. 할리우드에서 꿈을 품고 이루던 여배우는 늙고 낡아 간다. 그녀의 남은 바람은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을 연기하는 것. 꿈을 이루어 주는 은막의 스토리와는 달리 그녀의 인생은 어쩌면 '실패'에 가까운 그림자 드리운 음지일지도 모른다. 그런 그녀에게 마지막 캘리포니아는 아마도 피터의 따뜻한 품 속, 아니 그 피터의 자상한 가족이 있는 리버풀 그 집이었을지도 모른다. 흔히 '남자는 첫사랑, 여자는 끝사랑'이라는 말이 있다. 피터의 첫사랑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릴 수 있겠으나, 글로리아의 끝사랑만큼은 자명한 사실일 것이다. 어설프고 설익은 첫사랑보다 성숙하고 근사한 끝 사랑으로 일생을 마감한 글로리아의 삶은 해피엔딩이 아닐까.

어릴 적 잡지 [스크린]을 끼고 다녔다. 많은 영화와 그 속의 히어로들 헤로인들이 떠오르지만, 내게는 '아네트 베닝'과 '다이안 레인'이라는 쌍두마차가 늘 쿵쾅거리며 달리고 있었다. 한때 워렌 비티가 미워질 만큼 아네트 베닝은 구순기였던 할리우드 키드의 뮤즈였었다.('였다'... 지금 나의 뮤즈는 나와 동거 중이다 ^^) 첫 테이크에서 <유리 동물원> 출연을 준비하는 아네트 베닝의 얼굴과 손이 클오즈 업으로 잡히는데, 마음이 참 무거웠다. 나의 어릴 적 뮤즈도 세월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할머니가 되어 간다는 생각과 그만큼 나도 나이 들어간다는 사실이 서글펐다. 그러나, 영화에서 부러 깊은 주름 감추지 않은 그녀는 참 아름다웠다. 어릴 적 발레 신동(?) 제이미 벨과 함께 추던 디스코 몸짓에서 그녀의 아름다움은 여전하였고, 유방암 검진을 받으려고 노출한 그녀의 등에 박힌 잔근육은 아직 '관리 중'인 여배우 임을 여지없이 드러 내었다. 여전히 아름다운 그녀의 농익은 '철없는 천상 여배우' 연기는  대단하였다. 요즘 들어 '낡은 것', '오래된 것'에 대한 생각이 많이 스며든다. 이제 스스로 낡은 사람이라는 치졸한 자기 고백일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든 사람은 늙고 낡고 오래되기 마련이다. 사람뿐만이 아니라 이 세상도 그러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의 흐름과 세월의 지나감에도 여전한 것은 '사랑'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사랑이야기는 늘 유효하다. 가을이 지나가는 이 시기에 늦어도 11월에는 이 사랑 영화를 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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