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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읽기

[영화리뷰: 컨택트 (Arrival, 2016)] 내 삶 너머의 내 이야기, 바로 당신

by 박 스테72 2020. 2. 9.

대학에서 언어학을 연구하고 강의하는 루이스(에이미 아담스)는 어느 날 갑자기 정부의 요청으로 몬테나 들판으로 향하게 된다. 정체모를 12개의 미확인 물체가 지구 상 곳곳에 모습을 드러낸 이유를 밝히기 위해 물리학자 이안(제러미 레너)과 팀을 이루게 된다. 형상도 요소도 분석되기 어려운 미확인 물체에서 만난 미지의 생물체와 조우하게 되고, 그들의 알 수 없는 메시지를 읽어 내야만 하는데. 루이스는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고 그들이 이 지구 상에 도착(arrival)한 이유를 밝힐 수 있을까? 더욱이 현실보다 뚜렷한 꿈들에 대한 해석의 실마리도 찾을 수 있을까?

<그을린 사랑>, <시카리오>를 연출한 드니 빌뇌브의 <컨택트>는 남다른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물론 걸작이라 평가받는 원작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가 독창적인 소재와 주제로 독자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기에 영화도 잘 만들어진다면 그에 못지않을 것이라는 예측은 가능하다. 영화나 원작이 주는 이야기의 참신함은 근래에 매력적인 ‘스토리텔링’의 요소들이 두루 갖추어져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늘 꿈꾸는 ‘시간 개념’에 대한 변용에 잘 학습되고 연구된 학문적 이론이 보충된 이야기는 지어낸 이야기라도 사실처럼 받아들이기 쉽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나온 시간을 되돌리거나 오지 않은 시간을 미리 보고 싶어 한다. 더 이야기하자면, 지나온 시간 중 후회스러운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 하고 오지 않은 시간 중 행복하고 찬란한 시간만 보고 싶어 하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에 끌리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라는 것은 사람의 의지로 흘러가게 하거나 멈추게 할 수는 없는 것. 그래서 늘 시간에 대해 동경하고 경외하는 것이 인간일지도 모른다. 시간의 의미에 더해 영화 <컨택트>는 우리 일상의 가장 필수적인 요소인 ‘언어’에 대하여 깊은 생각을 던진다.

 

언어에 대하여

언어학자인 루이스는 미지의 세계에서 온 존재와 의사소통을 시도한다. 그 방법은 우리의 언어를 학습시켜 그들의 언어를 해석하는 것인데, 이는 ‘언어 결정론’과 ‘언어 상대성론’을쉽게 떠올리게 한다. 언어의 파편화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가늠하기 어렵지만 성경에 나오는 바벨탑의 이야기를 떠올리기만 하여도, 언어가 파생되고 서로 다른 모습으로 존재함에는 귀납적으로나 연역적으로나 인류 역사에 많은 의미를 던지는 것은 분명하다. 음절 어절이나 억양, 발음의 문제를 떠나 어원적 본류에서 갈라져 나온 수많은 어휘들이 본연의 모습으로 때로는 전혀 다른 양태로 쓰이는 것이 우리들의 ‘말’의 모양이다. 언어의 모든 요소들이 합해져서 그 언어를 공유하는 집단의 특성을 규정한다는 데에 큰 이견은 없을 것이다. 결국 상대적이든 결정적이든 언어는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의 공통적인 특정을 규정하고 사고와 인식을 ‘제한’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로 보인다. 

외계에서 온 것으로 추정되는 미확인 물체에 있는 미지의 생명체를 이해하기 위해, 인간은 자신들의 언어로 규정하려 든다. 자기들의 고유한 가치관과 개념, 그리고 규준에서 그들을 이해하려 한다. 같은 단어라 할지라도 화자와 청자의 실체는 다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자신들이 믿고 싶은 것, 보다 자신들에게 유불리의 계산이 서는 것으로 해석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너희들에게 Weapon을 주러 왔다.

이들의 지구 도착 목적을 처음 해석한 말은 위협적일 수밖에 없다. 영어 표현 weapon의 중의적 쓰임에도 불구하고 보다 빈도가 높은 뜻으로 해석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한글 번역의 아쉬움이 발견되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이 또한 언어적 제한으로 인한 ‘언어 결정론’이나 ‘언어 상대성론’을 이해할 수 있기에 나름 유의미하다. 이처럼 이방인의 언어를 오롯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언어적 의미 해석은 물론 문화나 생활의 양태, 살아온 이력의 이해가 필요한 것이다. 바로 그들의 ‘시간’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다.

 

시간에 대하여

국내 개봉 시 영화의 제목은 <Arrival>에서 <컨택트>로 바뀌어 있었다. 아마 1997년 20년 전 조디 포스터 주연의 <콘택트>과의 상호 텍스트나 기시감을 노린 마케팅으로 보이나, 개인적으로 재앙에 가까운 악수라 생각이 든다. 원제 <Arrival>이 주는 영화 전반적인 주제에 대한 암시와 복선을 왜곡하기 때문이다. 원제 <Arrival>에 대한 의미 해석을 중의적으로 해볼 수 있다는 것 만으로 영화가 이야기하는 언어와 시간에 대한 깊은 생각을 던져 주기 때문이다. 알 수 없는 먼 외계에서 공간과 시간의 한계를 넘어 지구에 ‘도착’ 한 미지의 존재에 대한 해석의 의미를 둘 수 도 있고, 예지몽 같이 선명한 미래의 어느 날에 대한 꿈이 현실이 되는 ‘도입’에 대한 의미일 수도 있다. 영화에서 이야기하는 언어로 인한 시간의 새로운 해석과 그 시간에 대한 고찰에 대한 의미, 즉 ‘the time of arrivel’ – ‘시기의 도래’에 대한 의미도 어렵지 않게 부여할 수 있다. 

영화의 도입부는 과거인지 현재인지 알 수 없는 루이스와 딸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영화의 말미에 그 이야기가 과거나 현재가 아닌 도래하는 내일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이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미지의 외계에서 온 손님 헵타 포드(7개의 발을 가진)들이 준 선물은 ‘언어’였지만 정작 그들이 준 진짜 선물은 ‘시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었을 것이다. 앞으로 벌어질 일들, 나의 앞날의 일들을 알면서도 루이스는 결심한다. 그 시간을 돌이키거나 바꾸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 어쩌면 그것부터가 시간에 대한 존재하는 서로에 대한 진정한 존중이기 때문이다. 영화 <컨택트>의 이야기 구조는 비선형으로 처음과 끝이 맞닿아있다. 하지만 온전한 고리라기보다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야기가 끝난 후에 바라보는 도입부는 전혀 다른 이야기처럼 다가온다.

결과를 알고 있음에도, 어떻게 흘러 갈지 알면서도, 
난 모든 걸 껴안을 거야.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을 반길 거야.

영화는 참 느리게 진행된다. 조조로 관람한 영화 <컨택트>는 자칫 집중을 잃으면 잠들게 될지도 모르는 그런 영화였다. 미확인 외계 물체와 생물에 대한 묘사, 전반적인 분위기를 잡아 내며 상상과 공상의 이야기도 사실처럼 묘사하는 감독 드니 빌뇌브의 연출은 곳곳에서 드러났다. 원작을 읽다 보면 영화로 만들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스며들 정도지만, 감독은 영화로 잘 풀어내었다. SF물인 줄 알고 들어와 본 영화가 너무 깊고 무거워 힘들어하는 관객이 많다는 것은 함정이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은 남아 있다. 그들의 언어에 대해 그것도 언어를 이야기하는 영화에서 말하기는 뭣하지만, ‘영어’로고찰되는 이야기를 오롯이 받아들이기는 힘들었다. 그리고 주요 이야기 주변의 이야기인 현재 국제 정세에 대한 투영은 조금 과하다 싶었다. 중국과 미국의 대결처럼 묘사되는 대치 상황이나, 루이스의 이전 정부 프로젝트가 페르시아어 해석을 통한 이라크 반군 제압이라는 이야기는 비판적으로 보이나, 그 또한 그들의 중심의 사고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또한 바벨탑 사건 이후의 언어 파편화로 인한 갈등의 현주소일지도 모른다.

네 삶 너머에도 너의 이야기는 존재 해.

시간 여행을 다룬 영화나, 미래에 대한 예지를 다룬 이야기는 매력이 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영화 <컨택트>가 주는 언어와 시간의 의미를 과학적이나 학문적으로 바라 볼 이유는 크지 않다. 단지 지금 나의 일상에 존재하는 ‘언어’와 ‘시간’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보는 것으로 충분한 일이다. 난 지금 사랑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시간 중에 가장 큰 파도가 다가 온 듯 흠뻑 빠져 있다. 그 사랑하는 관계에서 나의 언어와 그녀의 언어를 생각해 본다. 그 언어의 쓰임새와 의미의 해석이 동기화될 때 사랑은 완성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다. 내 삶 너머의 나의 이야기는 어쩌면 그녀의 이야기일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내일을 바라볼 능력이 주어진다 하여도 난 모든 것을 껴안고 모든 것을 반길 것이다. 

오늘 하늘도 참 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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